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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역사&디자인

서평: 현대 건축과 비표상(Non-representation)

by 꿈꾸는 건축가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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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에서 비표상으로...그 다음은 무엇일까? 

서평을 쓰기에 앞서 이 책의 내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설명하고자 한다. ‘현대건축과 비표상’이라는 이 책은 건축적인 경향이 근대 시기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변화와 이렇게 되게 만들었던 이유 혹은 배경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었고 현재 어떻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되고 있는 표상의 개념을 통하여 이러한 점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비표상의 개념을 정의하고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표상과 비표상이란 둘 중 어느 한쪽이 옳고 그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그 커다란 흐름 속에서 각 시점 혹은 시대마다의 요구되는 가치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필요성에 의하여 표상 혹은 비표상의 개념이 특정 시기에 문제점에 대한 반발로써 등장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나는 표상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에 이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표상의 개념을 찾는 시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비표상을 이룬 다음에 세상에서는 비표상의 한계점을 극복할 또 다른 무언가의 등장이 요구 되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결국 건축에서의 표상이니 비표상이니 하는 경향들은 각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방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특정시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성에 따라 요구되어지는 건축적인 방법 혹은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보며 서평에 접근 하려고 한다.

월트디즈니 콘서트

근대시기에 건축가들은 이 때 발생한 전후 무후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제안들을 하게 되고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들은 갑작스러운 인구증가로 인한 주거난에 대처해야 하고 도시팽창에 따른 무질서를 극복하기위해 도시의 기능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대량생산된 재료와 건설 기술을 가지고 기능적이고 경제적으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건축들은 도시나 건물이의 형태나 이미지보다는 경제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을 추구한다. 또한 근대 도시 이론가나 건축가들은 철저히 과학자의 태도로써 예정된 프로젝트(의미의 명징성)를 가지고 과학적인 가설과 이론을 통해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도시와 건물들은 획일적인 형태가 되었고 건축이 하나의 오브제로 정의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여기서 오브제의 근대 건축은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주체개념처럼 닫힌 체계였으며 계속하여 타자를 배제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통도시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공공 공간들(길, 광장, 전이 공간 등)이 건물 내부로 옮겨졌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공간은 건물 내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근대건축이론에 대한 반발로 이제는 형식자체가 더 이상 동일성을 표상하지 않으면서(자기 지시성)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근거(자율적인 형식체계)를 마련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등장 하게 된다.

질 들뢰즈가 제안한 주름과 랜드스케이프

여기서 자기 지시성과 자율적인 형식체계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선’을 예로 들어 설명되어질 수 있다. 리베스킨트의 선은 본질적으로 자율적인 형식체계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무규정적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의 본질이 아니라 선이 그의 건축을 어떻게 생성시키느냐는 것이다. 또한 그의 선들은 매우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통일성을 향해 움직이지도 않으며 단편화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 속에는 파열될 대상도, 가상적인 공간도, 주체도, 하위구조도, 기하학도 존재 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스스로를 규정(비표상)하고 있다. 근대건축이론에 대한 또 다른 반발로 기존 건축적 담론을 해체하려고 했던 건축가들이 있었다. 그 중 피터 아이젠만은 르네상스 이후 지금까지의 서구건축이 표상, 이성, 역사로 대변되는 인간중심적인 사유체계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학자 데리다(건축개념들 역시 텍스트의 개념 처럼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통해 그 의미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의 영향을 받아 건축을 언어나 기호의 차원으로 바라보지 않고 텍스트, 차연, 흔적 등을 주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서 건축을 할 때 장소에 담긴 기억의 흔적을 텍스트화 하고 그들이 서로 중첩되어 우연적인 사건을 발생 시키도록 했다. 이질적인 요인들의 충돌, 우연적 요소의 돌출, 이렇게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최대한 발생시키는 행위를 통해서 그 의미가 결정 되도록 했다. 건축가들은 이처럼 빠르게 변모하는 세계의 인식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에 반영하고자한다. 그리고 철학자들 또한 세계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통합하려했고 그 중 들뢰즈는 세상을 동일성의 시각으로 파악하는 대신 차이와 생성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려한다. 그가 제안한 주름의 개념은 이 세상은 일자이며 이들은 모두 상호 연결되어있으며 접혀있는 하나의 평면이라고 주장했으며 주체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랜드스케이프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건축가들은 건축에서의 형상과 배경, 내부와 외부, 대지와 건물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거부하고 이들을 하나의 주름(본질적으로 유기적이고 불규칙한 곡면) 잡힌 표면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랜드스케이프건축은 건축과 대지를 함께 흘러가는 표면으로 보며 자연자체가 아니라 지표면위에 인위적으로 시뮬레이션 된 연속된 표면을 가리키며 자연을 지시하거나 모방 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시(비표상)하며 대지표면에 내재된 힘들을 가지고 다양한 사건들을 생성시킨다. 건축에서의 디지털 모델링의 발전 또한 건축에서의 비표상의 개념을 불러일으켰다. 프랭크게리의 경우 매우 복잡한 곡면의 건축은 건축에 움직임과 힘을 부여하여 차이(힘의 강도에 따라서 곡률의 정도가 변화하는 것)를 생성해낸다는 점에서 들뢰즈가 세상을 차이로써 바라본 점과 유사하지만 디지털 모델링을 자신이 실제로 만든 모형을 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비표상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레그 린의 경우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를 가지고 설계를 하여 컴퓨터가 가지는 자체 생성원리에 의해 그의 건축이 스스로 도출 되도록 했단 점에서 그것은 비표상적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표상에서 비표상적으로 바뀐 것은 지도그리기나 건축에서의 다이어그램에서도 나타난다. 먼저 지도그리기의 경우 과거에는 지도를 그리는 것이란 실재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그것의 모습을 재현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현실을 발생시키는 잠재적인 힘의 움직임을 기입하고, 그것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펼쳐질 것인가를 사유하는 작업이 되었다. 그리고 건축에서의 다이어그램 작업 또한 기존의 대상이나 상황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발생되는 내재적인 생성 규칙들을 가리키고, 거기서 생성은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산 그 자체를 위한 생산,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생성을 의미 한다. 다이어그램은 마치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는 것과도 유사한데 그것의 경로는 불확정적이며 결과는 우연적이다. 단지 현재의 태풍모습과 이동방향등을 가지고 앞으로의 모습이나 이동방향을 추정할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태풍을 예측하는 작업은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현실로 수렴된다 라고 본다기보다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발산적이게 된다. 기존의 상황이나 대상을 표상하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새로운 것들을 생성하기에 다이어그램은 과거의 동일한 무엇을 표상하는 수단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새로운 지도 그리기나 건축에서의 다이어그램 작업은 앞에서 언급했던 리베스킨트의 선, 정해진 목표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해체하려던 해체주의, 그레그 린의 컴퓨터 자체생성원리 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비표상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프라

현대 건축에서 이러한 비표상적인 개념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천년 동안 건축의 이데올로기는 안정성, 실재성, 확고함 등을 건축적인 특징으로 간주해 왔다. 이것은 사회가 건축을 안정화, 제도화, 영속화의 수단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건축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간의 해체를 억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도시에서 기존의 도시에서처럼 고정된 질서나 동일성의 개념 등으로 현재 도시의 현실을 재대로 포착하기는 어려워졌다. 우리는 현대 도시에서의 계속해서 생성해 나가는 흐름들을 받아들이고 여기서 일어나는 이질성, 불확정성, 우연성, 상호침투 등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수용을 해야 한다. 다행이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은 ‘관계’에 대해서 논의함으로써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틀을 제공해주었고 우리는 현대도시를 비표상의 개념과 연관 시키려고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기능이나 효율을 강조하는 근대도시 이론 대신에 도시의 이미지나 형태를 강조하는 도시이론이 등장 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로 케빈 린치는 근대도시 이론처럼 효율성이나 기능성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대신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했으며, 도시는 그 자체로 복잡한 사회의 강력한 상징이며 만일 시각적으로 잘 디자인되어 있을 경우 강력한 표현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도시의 정체성을 도시경관의 가시성에서 찾으면서 도시의 형태와 그것이 주는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러한 점에서 케빈 린치의 생각은 도시를 형식과 의미 체계로 바라보려고 한 점에서 이전의 도시 계획가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나 관점과는 대조되는 시도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대건축과 비표상’에서 설명되어진 표상의 세계에서 비표상의 세계로 넘어오게 된 배경과 이유, 비표상을 이룰 수 있는 방식 등을 살펴보았다. 건축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의 생각을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간주되는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산업혁명이후 무질서한 도시 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근대 건축의 등장과 근대건축의 기능주의, 효율성, 획일화에 반발하여 나온 비표상의 개념의 대두는 예고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 되었지만 현대 건축에서 비표상의 개념이 나오게 된 이유는 타당하며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건축이론이 틀렸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이론이 등장하게 된 이유에는 나름의 필요성에 대한 시대의 배경이 있었고 그 시기에 그 이론은 당시의 상황에 대응하는 적합했던 방식이라고 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는 세상에 이전의 환경에 맞춰서 등장했던 이론에 의한 건축설계들은 당연히 현재에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거나 적합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근대건축이론에 대한 반발로써 대두된 건축에서의 비표상의 개념이 아주 잘 설명되어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서 근대로 넘어오게 되고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게 된 이유가 있듯이 현재 대두되고 있는 비표상의 개념 또한 미래에는 수정되어야할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근대건축이론의 반발로써 현실에 일시적인 대응방식으로써의 비표상 개념뿐만 아니라 과거의 문제점에 대하여 현재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나 경향(책에서는 비표상으로 설명)이 미래에도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혹은 과거와 같은 상황(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가 발생되는 것)을 극복하려면 적어도 지금 설명되고 있는 비표상의 개념을 어떻게 더 발전시켜야 좋을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다뤘으면 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의 비표상의 개념을 시도하려는 건물이나 형식주의이론에 근거한 도시들이 앞으로 많아진다고 하면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될 문제점은 세상이 비정형 건물들과 각각의 특이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도시들에 의하여 지금에 비하여 상당히 어지러워 질 것(시각적으로 혹은 프로그램 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언급했듯이 나는 건축에서 비표상을 추구하는 행동 또한 커다란 세상의 흐름 속에 한 부분내지 경향이라고 본다. 따라서 언젠가는 비표상을 추구하는 의지의 행동들 또한 시들해지며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도시나 건물들의 어지러운 미관과 혼재된 프로그램들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이 계속 발생되는 이유는 과거나 근대, 현대에 이르기 까지 너무 눈앞에 있는 문제의 상황에만 몰두하여 일시적인 대책이나 태도로써 그것에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여기서 약간은 플라톤적인 생각(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화할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변화하는 가치들을 영원히 고정 시킬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기존의 상황에서 다음의 상황으로 넘어갈 때 과거의 것을 어느 정도 수용하며 그것을 보완할 수 있고 계획적이고 과격하지 않게,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넘어 갈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에서의 비표상, 이것의 다음은 무엇일까? 확실 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형태적인 것(비정형) 외에도 불확정성, 불확실성, 의미의 다의적 해석내지 의미의 복수성 등의 개념들을 품고 있는 도시나 건물들이 어느 정도는 기존의 표상 개념이나 의미의 명징성과 기능성, 효율성 등을 다시 필요로 하게 될 것 같고 여기에 추가로 지금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어떤 무언가가 합쳐져 미래의 건축을 구성하게 되는 요소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서 현실에 건축을 하는 사람들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좀 더 날카로운 통찰력을 더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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