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세계명작

제주도 이색적인 사진 명소 "테쉬폰"

by 꿈꾸는 건축가 2023. 9. 4.
728x90
반응형
SMALL

기원

테쉬폰
테쉬폰

제주도의 여러 가지 관광 장소들 중 종종 눈에 띄는 곳이 바로 “테쉬폰”이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색적인 건축물의 양식(기원은 중동에 위치한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 지역에서 유행이었던 크테쉬폰 Ctesshphon 지역이 기원이라고 한다)인데 제주도 성이시돌 목장 근처에서 이를 찾아 볼 수 있다.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커다란 합판을 곡선형 (아치형태)로 둥글게 말아서 건물의 양쪽에 고정 시키고 구부러진 합판이 벽이 되면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벽체가 고정되면 후에 합판 위에 가마니나 억새를 덮고 시멘트 몰탈을 덧발라서 완성한다. 이를 설계한 사람은 푸른 눈의 임피제 신부(1954년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대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성이시돌 목장에 테쉬폰양식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피제 신부는 테쉬폰 설계 기술을 그의 고향이었던 아일랜드에서 배워왔다고 한다. 이 작은 집에는 침실, 부엌, 및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상당히 경제적이며 내부에 기둥이 없기 떄문에 시공이 편하고 건축 자재비를 일반적인 시공 방식에 비하여 더욱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테쉬폰의 현재와 미래

건설-테쉬폰
건설중인 테쉬폰

테쉬폰은 1960~70년대에 주로 작은 주택 (오늘날로 비교하면 원룸 형태 주택)이나 축사, 창고로 사용 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성이시돌 목장을 포함한 많지 않은 곳에만 건축물이 일부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한국땅이지만 제주도에서 어우러지는 테쉬폰을 보고 있자면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주도에 많은 오름들과 함께 보여지는 테쉬폰 건물을 보면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건조환경 또한 제주도의 천연 자연과 두루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건축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테쉬폰이 제주도와 임피제 신부 (본명 (P.J 맥그린치)의 상징으로써 한국 건축사의 한 획을 보여주는 가치( 전문가들에 따르면 테쉬폰은 국내에 몇 안되는 유럽산 건축 직수입 구조방식 이다)를 지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서 남은 건축물들 (현재 제주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20채 미만이라고 알려져 있다.)이 더 훼손되기 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매년 방문하고 유명한 사진 명소로 자리잡은 테쉬폰,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아치형의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고 제주도의 천연 자연환경과 결부되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창조하는 건축물인 것 같다.

 

테쉬폰의 또 다른 유래

테쉬폰 또는 Taysafun이라고도 불리는 Ctesipon은 이라크의 동쪽 중앙에 있는 현대 바그다드 남동쪽 약 32 km 의 티그리스 강의 왼쪽 (동북) 강둑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그것은 파르티아 제국의 겨울 수도와 나중에 사사니아 제국의 역할을 했다. 그 장소는 전통적으로 사사니아의 왕 호스로 1세 (재위: 531–579 CE)의 궁전으로 여겨지는 거대한 아치형 홀인 ṭ크 키스라의 유적으로 유명하지만, 샤푸르 1세 (재위: 241–272 CE)도 그 장소에 대한 작업을 착수했습니다. 그 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간 벽돌 아치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고전 문학가들은 크테시폰이 파르티아 왕 바르다네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테시폰에 대한 첫 번째 신뢰할 만한 언급은 헬레니즘 도시 셀레우키아의 맞은편 티그리스 강 동쪽 강둑에 있는 그리스 군대 진영으로서이다. 그 이후로 강의 흐름은 바뀌었고, 더 이상 두 도시의 폐허 사이를 흐르지 않고 대신 크테시폰 자체를 나누었다. 기원전 129년, 아르사코스 (파르티아인)가 바빌로니아를 합병했을 때, 그들은 크테시폰이 편리한 거주지와 거주지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들의 통치하에 셀레우키아와 그것의 왕실 교외 지역인 크테시폰은 쌍둥이 도시와 제국의 수도를 형성하게 되었니다. 셀레우키아와 크테시폰의 중단된 로마의 점령은 서기 116년 트라야누스 황제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장군에 의해 165년에 로마가 도시 단지를 약탈하는 동안, 크테시폰의 궁전들은 파괴되었고 셀레우키아는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224년에 아르사코스를 대체한 사티아 왕정은 크테시폰을 재정착시켰다.

 

 

 

참조자료;제주의소리, 제주일보

728x90
반응형